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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얘기

MZ세대라는 단어를 처음 만났을 당시의 추억과 생각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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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MZ세대라는 단어가 출현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추억을 운운하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MZ세대라는 단어는 대충 2021년쯤부터 우리 미디어 세상에 떠돌기 시작했고, 이 추억은 그보다 조금 앞선 2020년의 이야기다. 이렇게나 유행이나 트렌드가 짧게 지나간 적이 있었나 싶은 요즘, 무려 4년이나 지난 일은 추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또 괜히 내 생각 속의 허수아비 하나(일명 '누군가')를 패면서 글을 시작하겠다.
 
 때는 군 휴학을 마치고 대학으로 돌아온 때였다. 사실 대학으로 돌아왔다는 표현이 정확하지는 않은 것이, 당시 코로나19 때문에 대학에는 갈 일이 없었고, 모든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블루니, 학비가 아깝느니 하는 앓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지만, 아싸 생활 후 복학을 한 나에게 온라인 수업은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더군다나 군 휴학 전 학점도 많이 채워놓지 않았던 나였기에, 코로나 시기는 방구석에 앉아서 많은 학점을 채워놓을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이제는 수업내용은 커녕 수업명도 잘 기억나지 않는 교양 수업을 몇개씩 쌓아서 들었던 나는, 한 교양수업의 시험 대체 글쓰기 과제에서 이 MZ세대라는 단어를 처음 만나게 된다. 교수님이 직접 쓰신 MZ세대에 관한 논문 중 일부 내용을 발췌해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이를 읽고 몇가지 질문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쓰면 되는 간단한 글쓰기 과제였다. 당시 자료를 찾기 위해 MZ세대를 구글링했을 때 지금처럼 방대한 자료가 나오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 교수님도 참 그런 쪽으로는 빠르신 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만큼은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교수님이 주신 내용 또한 지금의 MZ세대 운운하는 글(주로 정치쪽에서 사용되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교수님이 이 과제를 내신 의도가 정말 학생들의 시험 점수를 대체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어차피 근 1년간은 얼굴 볼 일 없는 MZ세대들에게 자기가 쓴 일침글을 읽게 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찌됐건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제자의 의도 파악이라고 12년간 주입식으로 교육 받지 않았는가. 고민 끝에 사실 정답은 둘 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점수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MZ세대 일침글에 대한 MZ세대의 반성문'을 쓰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그리고 이 결론을 낸 바로 다음 든 생각은
 
 좆까. 였다.
 
 어렵게 들어간 인서울 대학교 졸업장만 따라는 말에 아무렇게나 학점을 따고 있던 나에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고, 그렇다고 아예 깽판을 칠 명분도 없었다. 물론 그럴만한 성격도 깡도 없었고. 그래서 나는 최대한 해당 수업에서 배운 글쓰기 문법대로, 글쓰기 과제의 틀에 맞춰서 교수님의 논문 돌려까기에 들어갔다.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글을 잘 쓰는 편도 아니고, 글에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편이었기 때문에 초고는 돌려까기 보다는 직접적인 비판과 비난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퇴고도 몇번씩 해서, 악플보다는 의견 제시에 가까운 글을 썼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B. 내가 코로나 기간 동안 받은 최악의 학점이며, 코로나가 아닌 기간까지 합쳐서 받은 교양 학점 중 최악의 학점이었다.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제출했지만, 이렇게 투명한 답변이 올 줄은 몰랐기에 당시에 혼자서 조금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B+ 정도는 받을 줄 알았는데.
 
 원래라면 여기서 끝났어야 할 내용이지만, 최근 들어 내가 왜 특히 MZ세대라는 단어에만 이렇게 부정적이게 반응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와 비슷한 인터넷 망령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들이라면 이런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에 익숙할 것이다. 초딩, 초글링, 급식충, 잼민이부터 학식충, 더 톡식해진 요즘은 거북유방단, 이대남, MH세대 등이 우리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단어들에는 크게 반응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자조하거나 가면을 쓰고 같이 노는 쪽에 속해있었다. 초딩때부터 내 아이디나 닉네임에 초딩을 자주 넣었고, 친구들과 장난을 칠때는 '이대남이 그렇지 뭐'하면서 자학개그를 하는 편이었다. (거북유방단은 당시 내가 둘 다 해당사항이 아니라서 좀 사렸음)
 
 어쩌면 그 논문 속 MZ세대의 내용이 나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너무 크게 빗겨나갔기 때문이었을까? 둘 다 아니었다. 실제로 몇가지 특징들은 분명히 나와 친구들의 것이었지만, 몇가지 특징들은 아예 아니었다. 때문에 해당 과제에 MZ세대라는 세대구분이 너무 넓어서 나열한 특징들이 특정 세대의 것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중구난방하다는 점을 지적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대체 뭘까.
 
 급하게 결론으로 치달아보자면, 아무래도 MZ세대라는 단어 자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담고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심지어는 요즘처럼 MZ세대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기도 전인데도 말이다. '나때는', '요즘 것들' 같은 표현들이 질타를 받자, 그저 그걸 대체하기 위해서 쓰는 단어라는 그 의도가, 너무나도 투명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논문 내용을 읽고 불쾌했던 것은 그 논문이 거대한 '요즘 것들' 패기였기 때문이었고, 심지어는 그 요즘 것들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요즘 것들을 넘어서 '내 밑으로'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이런 비판론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결국 익숙해지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년전 과제에 저런 개지랄을 해놨던 나조차도 정작 그 직후부터 MZ하다는 말을 많이 썼었다. 물론 원래 뜻대로 사용한 것은 아니고 '새롭고 특이한 것'을 볼 때 사용했다. '영한데? 완전 MZ인데요?'하는 그 밈처럼 말이다. 결국 그 밈이 유행하며 MZ라는 단어를 나름 웃긴 것으로 잘 희석시켜줬던 것 같다. 비슷한 예시로 원래는 비꼬는 별명이었던 '드멘'이 나중에는 정말 잘하게 되자 칭찬으로 쓰였던 것처럼, 결국 말의 용례라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충분히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혹시 부정적 별명을 갖게 될 일이 있다면 차라리 비꼬는 별명을 갖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결국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도'인 것 같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이 의도와 말을 분리하는 것이 더더욱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에미넴이 동생애자를 욕하는 단어를 썼다고 사과하고, 코미디언들이 웃기려고 한 말에 나락을 가는 세상이다. 가끔 밈의 유래를 찾아다니며 '이 밈은 유래가 나쁘니까 쓰지 말라'며 개개인한테까지 경찰짓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이제 사람들에게 말의 의도란 중요하지 않구나를 느낀다. 이거 참으로 MZ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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